가톨릭 사회운동 -社會運動

[라] motus socialis Catholicus [영] Catholic social movement

 

3-2.   가톨릭 농민 운동

   가톨릭 농민회는 한국 가톨릭 노동 청년회의 농촌 청년부로 시작하여 1966년 10월 17일 '한국 가톨릭 청년회'로 창립하였다.   이때에는 가톨릭 농촌 청년이 중심이 되어 착한 사람, 착한 생활, 모범 농사 등을 통한 마을의 환경 변화를 추구했으며 종교. 기술. 생활 교육에 의한 계몽 활동에 주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감하고 1971년 11월 조작 강화위원회에서 '농민 권익 옹호, 사회정의 실현'을 활동 목표로 설정 했다.   이것이 가톨릭 농민 운동의 첫걸음이 되었고, 가톨릭 농민 국제 연맹에 가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 가톨릭 농민회로 거듭 나면서 1974년 민간 단체로서는 최초로 '농지 임차 관계 조사'를 통해 토지 문제를 제기했고, 1975년부터 '살 생산비 조사'를 통한 가격 보장 활동을 전개 하였다.   현장 또는 전국 단위로 외국 곡물 수입 반대, 강제 농정 시정, 부당 농지세 시정, 농협 민주화 등의 활동을 끈질기게 추진하였다.   농협이 고구마 수매 계약을 이행하지 않아 발단이 된 '함평 고구마 사건'(1976~1978)에서도 농민은 2년만에 승리하였고, 이를 계기로 농협의 고구마 수매, 80억원 부정을 폭로하였다.   감자 농사 폐농으로 발단된 '안동 농민회 사건' (일명 오원춘 사건)은 가톨릭 농민 운동이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되었다.   1980년대에는 생산, 신용, 구판, 이용 협동, 공동 작업, 생활권 중심의 지역 협의 회 결성, 분회 활성화를 위한 마을 공동체 기반 조성, 유기 농업 및 도농 직거래, 살 및 밭작물 생산비 조사, 가격 예시 및 보장 요구, 농축산물 수입 반대, 부당 농지세 시정, 소작세(이른바 농지 임대차) 양성화 입법 추진 저지, 농민 관계 조합 민주화, 전국적인 소몰이, 경운기 시위, 반미 민족 자주 투쟁 등 활발한 운동을 전개하면서 현장과 지역, 전국 단위로 활동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1990년대에는 가톨릭 농민 운동 뿐 아니라 우리 나라 농민들에게 최대의 현안이 되고 있는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과 이것이 농촌 사회에 미칠 치명적인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대안으로 도시. 농촌간의 연대 활동과 생명 공동체 운동을 본격으로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