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사회운동 -社會運動

 

1-5.   [태동 배경]

    가톨릭 교회가 사회 문제에 대해 보인 관심과 실천의 기원을 살피려면 그리스도 교회의 창립 당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비교적 체계적인 가르침과 노력을 살펴보려면 초대 교회의 교부들에게로 가야한다.    그러나 교회사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교회의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과 실천은 대개 부분적이거나 개인적인 형태였다.    따라서 이를 기준으로 삼기는 어렵고, 비교적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관심과 활동이 시작된 때를 기준으로 보아야 한다.    이렇게 볼때 교회가 전 세계적인 규모에서 공식성을 가지고 사회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밝히거나, 적어도 사회에서 교회의 이러한 실천에 죽목하게 된 시기는 자본주의 단계에 들어와서임을 알 수 있다.   산업혁명 이후 노동 문제가 커다란 사회 문제로 등장하던 19세기에 들어서인 것인다.   그래서 가톨릭 사회 운동의 초기 형태는 노동 문제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다.    유럽에서 19세기는 가톨릭 사회 운동의 전성기라 할 만큼 사회 문제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활동이 두드러진 때였다.    그 예로 독일과 독일 주변국 가톨릭 신자들의 개인적 그리고 공동체적인 노력을 들 수 있다.   가톨릭 신자들의 이러한 결과는 레오 13세가 1891년 5월 15일에 반포한 <노동 헌장> (Rerum Novarum)으로 수렴된다.   이 회칙은 이후로도 가톨릭 사회 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노동 운동을 제외한 다른 운동들은 사회 변화의 단계외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운동은 20세기 초기에 와서야 비로소 태동되었고, 운동의 범위와 폭이 넓어지게 되는 시점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3세계의 등장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최 이후였다.

   한국의 가톨릭 사회 운동 역시 노동 문제에 관심으로부터 출발 하였다.   가톨릭 노동 청년회의 도입과 함께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노동 문제에 개입해 가는 과정에서 가톨릭 사회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운동은 1970년대 초에 군사 독재에 저항하고 인권 옹호와 민주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심화 되었다.   개발 독재로 규정되는 3공화국과 유신 시기에 군사 정권에 의한 혹독한 인권 탄압은 전국민적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이 시기에 한국 교회는 예언직을 본격적으로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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