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사회복지 - 福祉事業

[] Catholic welfare work ( Catholic welfare   service)

 

1.   자선. 구빈 사업

   그리스도교 사상은 이승훈에 의한 천주교의 수용 이전에 이미 실학 또는 서학이라는 하나의 학문으로 또는 사상으로 받아들여져 당시 양반 계급의 학자들 사이에 연구되고 전파 되었다.   그리스도교 사상이 전파되자 개인적으로 그 사상에 감화도이 신앙으로 실천에 옮긴 사람도 있었으니 홍유한 (1726~1785)의 예와 같이 천주교가 이당에서 시작된 이승훈의 세례 이전부터 그리스도교적 이웃 사랑의 사상은 실행되었다.   이와 같이 정식으로 교회가 설립되기 전부터 그리스도교 사상에 입각한 잔선 행위는 실행되었고 이후 이승훈이 세례르르받고 돌아온 후 전파되기 시작한 한국 천주교는 모진 박해 속에서도 줄기차게 번져 나갔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인 이웃 사랑을 모범적으로 실천하였으니 그 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한국 교회 초창기였던 19세기의 우리 나라 민중 생활은 대단히 비참하였다. 홍수와 기근, 해일, 우박과 같은 자연 재해는 주기적으로 발생하여 민중의 생활고를 심화 시켰던 것이다.   이와 같은 민중 생활의 도탄속에서도 가톨릭 신자들은 종교적 박해까지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 고초는 더욱 심각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신자들의 상부 상조 활동은 대단히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신자들은 모금 활동을 통해 감옥에 갇힌 신자들을 돕기도 하고 구빈 사업을 벌이기도 하였다.   개인적인 자선 행위의 예는 교회사를 통해 얼마든지 찾아볼수 있으며 조직적인 구빈 사업은 주로 명도회를 통해 전개되었다.

   초대 한국 천주교 신자들의 신심은 얼마나 두터웠던지 무서운 박해를 피해 다니면서 신앙을 지켰고 선행을 많이 했다.    이와 같이 초창기에 모범적인 시자들에 의해 행해졌던 박애. 자선 사상에서 우러난 수많은 구빈 사업은 신교 자유 이후에도 계속 되었으나 선행을 남에게 자랑하지 않는다는 생각과 비조직적이고 개인적. 일시적 자선 행위로 끝난 경우가 많아 그 기록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는 형편이다.

   빈민 구제 사업으로는 20세기 초 3.1 운동 당시 안성 천주교회에서 사목하던 공베르 신부 (Gombert ,한국명 공안국)의 경우를 들 수 있다.   공베르 신부는 자신의 본국인 프랑스에 호소해서 모은 돈으로 춘추 판공을 위해 공소를 방문할 때 곡식과 광목을 사다가 신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는 또한 고아들을 모아 친히 기르기도 하고 신자 집에 위탁하여 기르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미약한 자료이지만, 빈민 구제 사업이 끊이지 않고 어느시기에난 계속 되었음을 알수 있는데, 해방과 6.25를 겪는 동안 미국 가톨릭 구제위원회가 한국에 진출하면서 대대적이고도 조직적인 구빈 사업과 사회 개발 사업이 펼쳐졌다.

   가톨릭 구제위원회 (Catholic Relief Service : C.R.S)는 미국 천주교회의 주교 회의 산하 공식적인 해외 원조 가관인데,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세계 각지에 산재한 난민을 구호하고 전쟁 희생자와 빈민을 돕기 위하여 조직된 각국의 사회 사업 단체들을 금품으로 지원해 주기 위해 1943년에 조직되었다.   

   한국의 가톨릭 구제 위원횐ㄴ 1946년 처음으로 구호 사업을 시작 하였으며 1952년 의원법에 의하여 외원 단체로 보건 사회부에 등록하였다.    C.R.S는 자체 사업을 운영하면서 동시에 미국 정부, 한국 정부, 한국 천주교회 각 교구와 협력하여 시업을 벌이기도 하였다.    C.R.S의 사업은 양곡 사업, 의료 사업, 사회 경제 개발 사업, 지역 사회 개발 사업 등에 대한 후원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양곡 사업은 모자 보건, 아동 급식, 학교 급식, 근로지원 사업, 극빈자 구호 사업 등이며 지역 사회 개발 사업은 농로개설, 축산, 저수지 축조, 관개, 주택, 간척,신용 조합 육성 등을 위한 직접 또는 간접 원조이고 의료 사업은 비티만제, 기타 의약품 등의 공급과 병원의 설립 운영을 위한 원조 및 의료 기구의 지원 등이었다.

   전쟁의 상처가 아물고 1960년대 후반기부터 정부의 경제 개발 계획이 점차 성과를 거두고 국민 생활이 안정되어 갔다.   이에 교회는 구빈 사업에서 덕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지역 사회 개발 사업과 인간 개발 사업으로 점차 관심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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