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사회복지 - 福祉事業

[영] Catholic welfare work ( Catholic welfare   service)

 

11.    결론

    교회의 사회 복지 사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의 구체적인 실행인 것이며 그리스도의
왕직을 수행하는 것이다.    교회의 이러한 본질적인 사명에 따라 초세기부터 교회는 이웃 사랑을 실천해 왔고 한
국 교회도 처음부터 신자들이 사랑으로 자선을 베풀었고 1백여 년의 박해 끝에 신교 자유를 얻게 되자   곧바로
조직적인 근대적 사회 복지 사업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한국 가톨릭 교회의 사회 복지 사업은 한국 사회
복지사
(韓國 社會 福祉史)에서 언제나 선도적인 역활을 수행해 왔다.    이 점에 있어서 오늘날 한국의종교가
재산을 모이기만 할 뿐 사회에 환원하지 않는다는 국민적 비난에 대해 한국 가톨릭 교회는 떳떳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교회는 언제나 적절한 시회 복지 시책을 전개하여 그 시대의 사회 문제 해결책에 선구적 역활을 해왔다.   교회 창립 초창기부터 신자들은 개인적 차원에서 자선을 배풀었고 교회 차원에서는 서구의 선진적 방식과 자금을 지원받아 빈민 구제 사업, 아동 복지 사업, 노인 복지 사업 등을 수행함으로써 이땅에 근대적인 사회 복지 사업을 최초로 도입하였다.

   1854년 매스트르 신부에 의해 도입된 영해회 사업은 한국 최초의 근대적 아동 복지 사업이자 우리 나라에서 수행된 근대적 사회 복지 사업의 효시로 평가되고 있다.   1885년 블랑 (백) 주교에 설립된 '천주교 고아원'은 한국 최초의 아동 복지 시설로 기록되고 있다.   고아원과 함께 설립된 양로원은 한국 최초의 근대적 노인 복지 시설이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명칭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오랜 박해가 끝나고 신교의 자유를 얻은 가톨릭 교회는 활발한 사회 복지 사업을 시작하다가 곧바로 한일 합방과 제1차 세게대전, 제2차 세계대전을 당하면서 서양 교회의 지원을 받기가 어려워졌고 국내에서도 총독부와 가톨릭 교회간의 어려원 여건으로 별다른 활동을 하디 못하였다.   1945년 해방을 맞은 한국 교회는 사회 복지 사업에 있어서 이후 매 10년 단위로 괄목할 만한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 왔다.

   1950년대에는 해방과 한국 전쟁으로 인한 수많은 전쟁 이재민을 구하기 위해 미국 가톨릭 구제회의 원조로 긴급 구호 사업을 벌였다.   동시에 이 시기에 사회 도처에서 볼 수 있었던 나병 환자들을 돕기 위해 나환우 의료 사업과 나환우 복지 사업에 치중하였다.   1960년대에는 국민 생활의 급박한 상황이 진정되어 긴급 구호 사업에서 국민 생활의 근분적인 안정을 위해 사회 게발 및 인간 개발 사업에 눈을 돌였다.   농촌 개발 사업을 위해서 농로 개설, 관개 시설 확충 및 보수 사업, 간척 사업, 축산업 장려등의 사업을 교회가 선도 하였다.  

   1970년대에와서는 정부의 경제 개발 계획이 성과를 나타내기 시작하였고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도시 빈민 문제와 산업체 근로자들의 생활의 질 향상을 위해 사회 운동에 적극적이었다.   이것은 당시 정치적 반독재 투쟁과 맞물려 교회의 사회 참여에 있어서 강.온 양면으로 갈려 방법론상의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1980년대에는 장애인 복지와 노인 복지에 관심을 보였고 아동 복지 사업도 이동 복지 사업 시설에서 아동 복지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미혼모 복지, 모자 복지에 관심을 돌려 더욱 발전된 사회 복지관을 나타내 보였다.

   1990년대에 와서는 전문 사회 복지 사업에로 관심을 돌려 지금까지 물질적 원조이 차원에서 더욱 전문적인 사회 복지 서어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요보호 대상자들의 자립 재활에 더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단순한 물질적 원조보다 생활상의 어려움을 돕는 차원에서 자원 봉사자 교육을 통한 가정 봉사 사업을 시작하여 교회의 사회 복지 서비스를 다양화하고 그 질을 높였다.

   1993년은 한국 교회의 해외 원조 원년으로 기록될 획기적인 해가 되었다.   이국 교회로부터 도움을 받던 교회에서 1962년 자치 교구로 되면서 자구(自救)에 온갖 노력을 다해 왔는데 1993년을 기해 드디어 도움을 베푸는 교회로 발전한 것이다.   물론,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불우한 형제가 많이 있다.   가가운 이웃을 버려둔채, 멀리 있는 형제를 돕는다는 것은 모순된 행위라는 비판도 있음을 한국 교회는 알아야 한다.   국가의 벽을 뛰어넘듯이 가까운 본당이나 교구의 높은 벽을 허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한국 교회가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참고 문헌 >

朴錫敦, <韓國 天主敎福祉事業에 관한 硏究>,大邱大學校 大學院 碩士學位 論文, 1981

유홍렬, <한국 천주교회사>, 가톨릭 출판사, 1962

任珍昌, <韓國 社會發展과 가톨릭 敎會의 役割> 西江大學校 社會問題硏究所, 1976

한국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바오로 뜰안의 哀歌 85>, 가톨릭 출판사, 1973/<달레 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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