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사회운동 -社會運動

[라] motus socialis Catholicus [영] Catholic social movement

 

3-4.   민주화 운동과 인권 운동

   민주화 운동은 시기별로 운동 주체에서 차이가 난다.   1970년대에는 비교적 정권에 대해서 자율성을 갖는 프로테스탄트, 가톨릭 과 같은 국제적인 기반을 가진 종교들이 저항운동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자율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제운동이 중심이 되었다.   그래서 형태적으로는 예언자적이었고, 내용적으로는 고발의 성격이 강한 것이 특징 이었다.   물론 평신도들의 참여가 참여가 없었던것은 아니었지만 일반 신자들에게는 생계를 보장 받을수 없는 위험한 정국이었기 때문에 사제 중심의 운동이 주축이 될 수 밖에 없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운동의 대중화와 기층 운동의 성장 결과 평신도 가운데 가톨릭 학생 운동이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고, 평신도 성인들의 참여도 급증하였다.

   1970년대에는 유신 체제 철폐 운동, 인권 유린에 대한 항의, 만중의 창의와 참여가 보장되는 민주 사회 실현을 위한 사제단과 기타 평신도 단체의 활동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 시례로 유신 헌법과 긴급 조치 반대 운동 (1974~1975),민주 회복 국민회의 결성과 운영 (1974.11.27~1975.2.4), 그리고 각종 민주 연합체의 결성과 참여, 원주 선언과 3.1 민주 구국선언 (1975), 자유 언론 실천 운동 (1974.10~1975.3)에 대한 지원, 동아일보 광고 탄압에 대한 대응, 언론 통제의 실상인 보도 지침 공개,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의 결성과 개헌 운동 서명 운동 등이 있다.   인권운동으로는 가도회 개최를 비롯하여, 김지하 구명운동(1975~1981), 인혁단 사건 진상 조사와 구명 운동, 서울 법대 최종길 교수의 고문 치사 사건 조사 (1975), 양심 선언 운동 (1974~1975)을 전개하였다....

   또한 민청 학련 사건, 남민전 사건, 김재규 사건, 5.17 정변 및 광주 항쟁 관련 사건, 전민학련 사건 (1981),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 (1982), 서울 미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 (1985), 부천서 성고문 폭로와 이와 관련된 사건 (1986), 박종철 군 고문 살인 사건(1987)에서처럼 법률 구조 활동, 구명운동, 서명운동 등 사제단과 평신도 운동 단체가 중심이 되고 학생 청년이 연대하는 형식의 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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