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사회운동 -社會運動

[라] motus socialis Catholicus [영] Catholic social movement

 

3-5.   통일운동

   한국 교회의 통일 운동은 19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활발해졌다.   올림픽 개최를 포함하여 1980년대 후반은 남한 전체의 통일 운동이 활발했던 시기였다.   가톨릭 교회의 운동에는 사제단과 가톨릭 대학생과 청년이 주도한 통일 운동, 교회의 공식 기구인 북한 선교위원회가 주도한 통일 운동 노력으로 크게 구분된다.

   한국 천주교회는 통일 문제에 관한 공식 입장이나 구체적인 통일 방안을 제안하지 못했지만 정의 구현 사제단, 청년 학생 등을 중심으로 분단의 고통에 동참하려 노력하였다.   천주교 사회 운동 협의회, 평신도 단체들과 청년 단체들 또한 통일에 고나한 지지 성명, 입장 표명, 통일 문제에 관해 자체 연구를 해왔고 정의 구현 사제단과 북한 선교위원회를 중심으로 통일에 관한 한국 교회의 입장을 정리하는 이론적인 노력들을 수행해 왔다.   한국 가톨릭 농민회는 이 땅의 모든이가 함께 어우러질 그날을 위해 기층 대중의 하나 됨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1984년과 1986년에 이어 1988년 8월 8일 '북한의 농민 형제'에게 종자. 농업기계. 영농 시찰단 교류 등의 남북 교류를 제안하였다.   교회에서는 1982년 12월 천주교 20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북한 선교부를 설치 하였으나 초기에는 이렇다 활동을 하지 못했다.   보다 체계적인 사회 운동의 전망 속에서 통일 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1988년 이후 청년 학생들의 선도적인 통일 운동을 배경으로, 정의 구현 사제단을 중심으로 수행되었다.

   1988년 이후 보다 구체화된 사제단의 통일 노력은 다음과 같은 배경에서 나왔다.   1988년 6월 전대협의 판문점 남북 학생 회담 출정식 및 '평양 축전' 참가 발표, 남북 동포간의 상호 교류의 적극 추진 의사를 밝힌 노태우 대통령의 7.7, 야당 정치인의 감일성 주석 면담용의 표명, 1989년 경제인 정주영의 평양 방문, 문익환 목사의 입북 및 구속, 이영희 <한겨레 신문> 논설 고문의 북한 취재 기획에 다른 구속, 서경원 의원의 평양행 사건 발표와 구속, 이와 관련한 가톨릭 농민회 간부의 구속, 전대협 대표 임수경양의 평양 축전 참가, 서경원 의원 수사를 위한 정치인 소환과 구인장 발부 사건 등이 사회에 파문을 일으키던 상황에서였다.   1989년 7월 5일 사제단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에 기여하고 임수경 (수산나) 양의 안전 귀환을 위해" 문규현 신부를 북한에 파견, 임수경과 함께 귀환토록 할 것을 결의하였다.

   사제단은 1988년 이후 통일 신학의 정립을 위한 연구를 본격화했으며, 통일 문제 관한 위크숍도 개최하였다.   또한 1989년 6월 6일의 임진각 통일 염원 미사 마련, 1989년 11월 4일 국가 보안법 철폐를 위한 천주교 공동위원회 결성 참여, 1990년 8월 16일 통일 염원 미사 마련 등 통일을 위한 실천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통일 문제에 관한 사제단의 기본 입장들을 표명하였다.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이 1988년 7월 4일의 "민족의 하나됨을 위하여-우리의 기도와 선언", 1989년 6월 6일 임진각 마사에서 발표된 " 이 땅에 그리스도의 평화를 심기 위하여-민족 통일을 향한 우리의 기도아 선언"' 1989년 8월 4일 정부의 7.7선언 이행 문제에 관한 공개 질의로서 제시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하여", 1990년 8월 16일 임진각 마사에서 표명된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향한 우리의 소망"등이다.   이 선언에서는 7.4 남북 공동 서명의 합의 사항인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의 3대 원칙을 수용, 통일 문제와 민주화 문제가 동시적으로 제기되어야 한다는 것, 정부의 통일논의 독점 반대 - 민간 차원의 통일 논의. 민간 교류 지지. 국가 보안법 철폐. 민족 자주화와 외세 불간섭. 미군 철수. 비핵화. 군비 축소. 불가침 선언 표명. 휴전 협정의 평화 협정으로의 대체라는 평화 군축 운동 등에 관한 사제단의 입장이 천명되었다.

   통일을 위한 여러 실천과 각종 선언들 (시국 선언 등)과 함께 민족 통일 문제에 관한 사제단의 이러한 입장 표명은 가톨릭 산자들의 통일 문제 의식을 유도하고, 비록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었지만 교회 통일 운동의 방향을 이끌어 왔다.   문규현 신부의 방북 이후에는 그로인해 빚어진 교회 안의 혼란을 극복하고 사제단의 통일 노력을 계속해서 확산 시키며, 사제단과 기타 교회 활동 단체들, 일반 신자들의 통일 노력을 집결시키는 조직적인 구심을 확보하고자 1989년 11월 4일 '국가 보안법 철폐를 위한 천주교 공동위원회'를 발족 시켰다.    또한 1989년과 1990년의 임진각 미사는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 통일을 위한 사제. 평신도들의 의지를 천며하는 행사로서 통일 운동을 대중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통일과 북한 선교를 위한 최근 교회 내의 활발한 움직임 또한 통일 운동의 중요한 부분이다.   북한 선교 위원회가 주관하는 통일 사목 연구 세미나 등의 연구 발표 활동, 전국 평신도 사도직협의회 남북 신자 상호 방문 요청, 납북 사제들에 대한 주교 회의의 행방 확인 요청 등 교회 내 각층의 활동 증가는 통일 운동을 위한 저변 확대의 일환으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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