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사회복지 - 福祉事業

[] Catholic welfare work ( Catholic welfare   service)

 

4.   노인 복지 사업

   천주교 고아원을 개설하면서 동시에, 교회는 종로 똥골 (현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도 큰 기와 한 채를 사서 의지할 곳 없는 남녀 노인들 40명을 모아 수용하였다.     이것이 한국 최초의 고아원과 양로원이었고 고아원은 오늘까지 계속되어 오고 있으나 양로원은 그 후 종현 (현재의 서울 중구 명동)으로 옮겼다가 1894년 이후 한때 폐지되기도 하였다.     그 후 1924년 종현의 몇몇 유지 신자들이 '애긍회'를 창립, 무의 무탁한 노인들을 수용.보호 함으로써 양로원이 다시 시작되었다.  

   대구 대교구에서 1917년 2월 1일 설립도니 인애회는 노인 복지 시설 사업을 한 것이 아니라 재가노인 복지 사업을 실시 하였다.   인애회는 매년 회원을 모집, 회비 형식으로 모금을 하여 무의탁 노약자들에게 주택을 마련해 주고 사망시 장례를 치러 주었다.   회비를 내는 회원을 위해서는 매년 생미사를 한 대씩 드리고 사망하면 연미사를 드려주었다.

   초창기 한국 가톨릭 교회의 노인 복지 사업은 "영혼 구원"이라는 차원에서 신자들의 자발적인 헌금으로 이루어져 일시적인 구호의 수준에 머물렀고 시설 노인 복지 사업은 재정적인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워 지속적으로 확산되지는 못하였다.   그래서 해방 전까지 1900년 부천의 성가 양로원, 1936년 포항 요셉의 집, 1943년 청주 성심원 등이 있었을 뿐이었다.

   해방과 한국 전쟁을 통해 한국 사회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에 교회는 긴급 구호 사업과 나환우 복지 사업에 주력해 왔다.   그 후 우리 나라가 산업화, 고령화 되어 감에 따라 교회가 노인 문제에 관심을 집중적으로 보이기 시작한것은 1980년대에 와서 부터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에와서 각 교구는 노인 복지 시설을 많이 설치 하였다.   현재의 교회 관련 노인 복지 시설의 반 이상이 이 시기에 설립된 것이다.   이 시기의 교회 노인 복지 사업의 특징은 노인에 대한 사회 교육 사업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는 노인 대학을 다투어 개설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대도시에서의 노인 문제는 빈곤 노인 문제보다 노인들의 소외 문제와 세대간의 갈등 문제가 더욱 심화 되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교회는 노인 대학을 통해 노인들로 하여금 급변한믄 현대 사회에 적응하고 가정에서의 세대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교육과 상담을 실시하고 가정에서의 세대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교육과 상담을 실시하고 아울러 레크레이션을 제공함으로써 노인 복지에 큰 역활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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