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사회복지 - 福祉事業

[] Catholic welfare work ( Catholic welfare   service)

 

5.   나환우 복지 사업

   한국 천주교회가 나환우 복지 사업을 처음 시작한 것은 해방 직후 부랑 나환우들을 위한 구호 및 의료 사업의 필요성을 절감한 캐롤 (G.Carroll 안) 주교가 1948년 현재의 라자로워 자리에 있던 당시 세브란스병원 부속 결핵 요양소를 사들여 성 라자로 요양원을 설립하고 부랑 나환우를 치료한 데서부터 비롯된다.

   8.15 광복을 맞는 우리 나라는 혼란에 빠졌고, 이를틈타 나환우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심각한 상황이 되어 갔다.   일제 하에서는 붙들리게 되면 소록도로 보내어졌고, 그곳에 일단 들어가면 죽어서도 나올수 없다는 공포심에 은둔 생활하던 환자들, 그리고 각 수용 기관에서 탈출한 환자들이 삼상오오 떼지어 부랑 구걸하게 되었다.   이때까지도 치료약이란 대풍자유가 고작이었는데 환자들로서는 그마저 구할 수 있는 형편이 못되었으며 붕대도 없어 헝겊 조각으로 곪아터진 피부를 감고 다녔다.   이와 같이 기아와 병고 속을 헤매는 환자들의 수는 1946~1947년에 절정에 달해 매일 같이 신문에 보도되는 등 국가와 사회에 커다란 부담을 안겨 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각국의 나관리 추세는 이제까지의 격리 수용 수용에서 재가 치료로 전환 되었고 이와 함께 이동 진료 기법이 등장 하였다.   1950년대 필리핀의 이동 진료는 세계의 이목을 끌었으며 우리 나라에서도 이 같은 세계적 동향에 다라 1950년대 후반에 이르러 이동 진료 기법이 도입되었다.

   이 시기에 한국 거톨릭 교회도 본격적인 나환우 복지 사업을 벌이게 되었는데 그것은 1955년 스위니 (Joseph A. Sweeny, 서) 신부가 한국에 오면서부터였다.    스위니 신부는 믿국 메리놀회 소속으로 중국 광동성에서 26년동안 구라 사업을 하다가 그곳이 공산화되자 본국인 미국으로 귀국, 카빌요양소에서 근무했으며 한국에는 1954년 입국하였다.    스위니 신부는 오랫동안 중국 본토에서 나환우 진료 및 구호 사업을 해온 경험을 살려 나환우들을 찾아다니며 치료하는 이동 진료를 시작하였다.   1955년 9월 천주교 구라회를 창립한 스위니 신부는 이듬해 말부터 매월 1회씩 강원(원주), 경기(화성), 충남(예산, 공주, 논산), 전북(전주,남원), 충북(옥천,영동), 경북(김천,상주,예천,봉화,영일,대구), 경남(밀양,창녕,진주,사천,충무,거제,김해,마산,부산)등 전국을 두루 돌면서 제가 환자들에 대한 진료를 실시하였다.   이것이 우리 나라 최초의 이동 진료 사업인데 그 활동 근거는 성 라자로원에 두고 잇었다.   그러다가 재가 환자들을 찾아다니는 어려움을 느껴 이들이 일정한 지역에 모여 살도록 정착촌을 만들게 되었는데 1961년부터는 정부도 음성 나환우 (치료된 나환우)들을 위한 정착촌을 만들어 주게 되었다.

   1961년 4월 24일에 내한한 오스트리아 간호사 엠마 프라이징거 (Emma Freisinger)는 이 사업을 승계하여 그의 모국 가톨릭 부인회 지원으로 대구시 봉덕동 1275번지의 임야 15,000평을 매입, 숙사를 건립하고 전염의 우려가 있는 양성 환자의 자녀들을 그 부무로부터 분리시켜 돌보게 된 것이 가톨릭 피부과의원의 시발이었다.

   이렇게 교구마다 독자적으로 나환우 복지 사업을 하고있던 성직자, 수도자, 평신자들이 서로 협력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들은 상호 유기적인 협조 아래 나환우 복지 사업을 함으로써 함께 연구하고 서로 정보를 교환함으로써 중복된 구호를 없애고 애로 사항을 공동으로 해결해나가며 정부나 나협회 등 유관 기관과의 협조 등을 목적으로 1967년 가톨릭 나사업가연합회를 결성하게 되었다.

   가톨릭 나사업가연합회는 기본 사업으로 나병 계몽 사업, 의료 사업, 교육 사업, 자립 사업, 불구 환자 수용 보호 사업, 후원회 육성 사업 등을 벌였다.    연합회는 오스트리아 가톨릭 부녀회와 서독 구라협회와 관련을 맺고 적극적인 후언을 받았다.   오스트리아 부인회는 사회 복지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의료 기관, 나환우 복지 사업 단체 및 양로원 고아원을 돕는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부인회는 교육 사업 (사회 농업. 가내 수공업 등), 개발 사업, 의료 사업, 나환우 복지 사업, 난민 구제 사업, 양로원 고아원 등의 운영비 및 시설비 지원 사업 등을 기본 사업으로 삼았다.    이 단체는 원칙적으로 직접 사업을 하지 않고 현금 등 재정 지원을 주로 하나 세계 각국의 나사업에 관한 자료 교환 및 계몽을 위한 출판 사업, 나병 연구 사업 등을 벌이기도 했다.    이러한 목적을 가진 이 단체는 주된 사업으로 정착촌 자립 사업, 의료 사업, 나이동 진료반 사업, 교육, 연구, 시설 설치 및 유지,계몽, (환자 자녀) 복지, 불구 환자 수용 보호 등의 사업에 재정적 지원 사업을 벌여 왔다.

   1968년 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는 '세계 나병의 날'인 1월 마지막 주일을 '구라 주일'로 선포하고 매년 이날에는 전국 각 본당 및 가톨릭 기관을 대상으로 나병에 대한 계몽과 나환우 복지 사업에 협조를 호소하고 주일 미사 때 헌금을 받아 가톨릭 나사업가연합회의 각종 사업에 사용케 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나환우 복지 사업은 나환우 의료 사업과 음성 환우의 재활 및 자립을 목적으로 하는 정착 마을 사업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사업은 1960년대까지 매우 호라발하였으나 나병에 대한 의료 기술의 발전과 제가 환우 발굴 사업이 성공적으로 수행되어 1970년대에 와서는 신규 사업이 점차 줄어 들었고 1980년대에 와서는 신규 사업이 없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의 나환우 진료 사업이 성공을 거두어 현재의 고령 나환우 외에 더 이상 발병하지 않고 있어 가톨릭 교회의 나환우 복지 사업도 점차 매듭되어 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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