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사회복지 - 福祉事業

[] Catholic welfare work ( Catholic welfare   service)

 

6.   무의탁자 복지 사업

   교회의 무의탁자 사업은 1980년대에 와서 부랑인 수용 보호 사업과 재가 무의탁 노인 및 도시 저소득충 주민들을 위한 식사 제공 사업으로 이루어진다.   부랑인 수용 보호 시설은 초기 한국 교회의 자선 구빈 사업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병들고 가난한 이들을 돌본다는 것을 예수께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루가 10,25-37)로 가르쳐 주신 교회의 기본적인 의무로 생각해 왔다.   교회는 이러한 정신으로 가난하고 의지할 데가 없는 이들을 돌보는 부랑인 복지 사업을 펼쳐 왔다.   그러나 교회의 재정 능력의 한계로 그 규모와 보호의 내용상 많은 제약을 받아 왔다.   1981년 정부는 전국적으로 부랑인 실태 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토대로 국가적 차원에서 부랑인 대책을 수립, 1982년부터 중앙 정부의 지원 아래 부랑인 보호 사업을 실시하게 되었다.   이때까지 지방 자치 단체 또는 민간에 의해 행해져 오던 부랑인 수용 보호 시설이 피보호자에 대한 비인간적인 처우와 온갖 비리. 부정등으로 사회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따라서 정부는 부랑인 수용 시설의 정비 및 지원을 강화하고 그 운영을 종교 재단에 위탁하기로 함에 따라 전국적으로 각 교구 또는  수도회에서 부랑인 수용 시설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부랑인 시설의 입소 대상은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가 있어도 보호할 능력이 없는 65세 이상의 노인, 18세 미만의 아동, 고질적인 정신 질환 또는 심신 장애 등 생활 능력이 없는 부랑인, 일정한 주거가 없이 구걸하는 부랑인으로서 본인이 시설 수용 보호를 원하는 자를 심사 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입소시켜 보호한다.  

   부랑인 문제를 보는 시각에는 개인적. 가정적 문제로 보고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부랑인 복지를 위해서는 전문 지식과 전문 기술은 2차적인 것이며 인간 존엄성과 사랑의 정신이 가장 중요시된다.   이런 점에서 교회가 부랑인 복지 사업을 맡게 된 당위성이 인정되는 것이다.   부랑인의 발생 요인은 개인적. 가정적. 사회적인 요인으로 볼 수 있다.   개인적 요인으로는 개인의 능력 부족, 나태성, 질병 및 장애 등을 들 수 있다.   가정적 요인으로는 가정의 보호 능력 상실, 결손 가정 등을 들 수 있다.   사회적인 요인으로는 사회 변화에 다른 적응 능력의 결여를 들 수 있다.

   이러한 문제와 대상자의 다양성을 무시한 채 대규모 수용 시설에 혼합 수용 보호 하는 방식은 오늘날 사회 복지의 개별화. 전문화 이념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교회가 부랑인 보호 시설을 위탁 운영하고 부터는 보호의 수준이 향상되었다고는 하나 이러한 보호의 개별화. 전문화에 대해서는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교회 부랑인 복지 사업의 향후 괴제는 보호 대상자의 문제성에 따른 분류화와 자립. 자활을 위한 교육과 직업 훈련을 통한 사회 복귀를 도모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재가 무의탁 노인을 위한 가정 봉사 사업은 자원 봉사자를 통해 이루어진다.   1980년대에 와서 각 교구 사회 복지회는 정기적 도는 부정기적으로 자원 봉사자 교육을 실시, 재가 무의탁 노인들의 가사 돌보기 사업에 파견해 왔다.   교회가 벌이는 강정 봉사 사업의 내용으로는 식사 준비, 빨래, 목욕, 심부름, 말 벗, 기타 집안일 돌보기 등이다.    가정 봉사 사업은 무의탁 노인뿐만 아니라 장애인 가정, 소년.소녀 가장 세대 등에도 필요한 사업으로 오늘날 지역 복지 이념과 정상화 이념 (normailzation)에 따라 가톨릭 교회가 더욱 관심을 가지고 확신시켜 나가야할 분야라 하겠다.

   부랑인 및 저소득 주민들을 위한 교회의 무료 식사 제공 사업은 1980년대 후반에 와서 대도시를 중심으로 생겨났다.   운영은 전적으로 신자들의 자발적인 헌금과 자원 봉사로 이루어지고 있어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을 절실히 느낄 수 있는 사업이라 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 중진국이라 자처하는 우리 나라에서 아직도 절대 빈곤 수준에서 생활하는 주민이 더 많다는 사실은 정부와 교회가 부의 재분배에 더욱 관심을 보여야 할 것 임을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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